[하루수다] 충치가 생겼다

하루 / 2023-02-14 11:29:00
아무도 상황을 바꿔주지 않는다.

필자 하루의 ‘하루수다’는 일상생활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하루의 수다를 푸는 형식으로 올리는 글입니다. 특히 하루는 일본어로 ‘봄’이라는 뜻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필자 하루와 함께 일상생활의 수다를 풀어볼까 합니다. (편집자의 주)

  출처=Pixabay

 

오른쪽 어금니 사이에 작은 충치가 생겼다. 며칠 전부터 위 어금니 하나가 흔들려 정기검진도 받을 겸 찾아간 치과병원에서 주치의가 일러 주었다. 의사는 어금니 사이가 너무 좁아서 양치질이 잘 안된 것 같다며 혀를 끌끌 찼다. 치아를 좀 더 꼼꼼하게 관리하라는 무언의 충고 같았다.

충치가 발생한 자리에 직접 손을 댈 수가 없어 신경치료를 해야 한다는 의사의 조언은 절망적이기까지 했다. 후다닥 스케일링이 끝나고 신경치료가 진행됐다. 벌레 먹은 치아에 구멍을 뚫는 소리가 들렸다. 핀셋 같은 걸로 구멍 속을 헤집고 들어가 뭔가 마구 파내는 느낌이 들었지만 마취를 한 상태라 고통은 없었다.

문제는 마취가 풀리면서부터 시작됐다. 치료한 치아가 갑자기 쑤시기 시작하더니 어느 순간 신경을 콕콕 찌르는 느낌이 들었다. 오른쪽으로 음식물을 씹는 것도 힘들었고 양치하는 것도 불편했다.

“신경을 건드렸는데 아프지 않은 게 이상한 일이죠. 한 며칠 지나면 괜찮아 질 겁니다”

무미건조한 의사의 말이 얄밉게 느껴졌다. 마침 그날 밤 텔레비전에서 치아건강에 대한 교양 프로그램이 방송됐다. 요즘 텔레비전도 유튜브처럼 알고리즘의 기술이 있었던가? 우연치고는 꽤 절묘했기에 눈을 크게 뜨고 꼼꼼하게 시청했다.

살다보면 성가신 일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때에 무방비 상태로 툭 튀어 온다. 대개는 그저 운이 없어서 그런거라고 훌훌 털어 버리면 그만인 것들이다. 짜여진대로 인생이 착착 돌아가면 얼마나 심심할까?

이미 벌어졌으니 자기 방식대로 ‘치유’하거나 내려놓으면 되는거다. 완벽하게 치아 관리를 하는 사람이라도 아차하는 순간 충치는 생길 수 있다. 초기에 발견하지 못하면 급속도로 썩어 잇몸까지 위협한다. 발견이 늦더라도 한 자리에서 자책하며 끙끙 앓기만 하면 안된다. 적극적으로 일어나 상처를 도려내야 한다.

우리 삶에는 충치와 같은 일들이 참 많이 생긴다. 갑작스런 사고를 당하기도 하고 작은 병을 얻거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별 통보를 받기도 한다. 취업 면접에 떨어질 때도 있고, 주식투자로 큰 돈을 날리기도 한다. 참 많은 고통이 여러 형태로 몰려온다. 그럴 때 자꾸 안으로만 숨으면 충치처럼 염증은 더 번진다.

상처는 짧게 끊을 수 있을 때 끊어야 한다. 묵히면 안된다. 어렸을 적 넘어지거나 벌에 쏘이면 엄마는 상처 부위에 된장을 발라 주었다. 된장의 약효가 상처를 낫게 한다는 민간요법일테니, 묵힐 것은 상처가 아니라 된장 아니겠는가?

요즘 읽고 있는 책이 한 권 있다. 김혜남 작가의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이라는 에세이다. 작가는 정신분석 전문의로 일하다가 나이 마흔 세 살에 파킨슨병을 얻는다. 처음 병에 걸렸을 때 아무 것도 할 수 없어서 한 달 동안 침대에 누워 천장만 바라보았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아직 자신은 죽은게 아니며 누워 있는다고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 깨달음은 그녀에게 용기를 주었고 22년 동안 병마와 싸우며 책을 10권이나 쓴 원동력이 되었다. 그녀야말로 자신에게 번진 ‘충치 같은 불행’을 담대하게 물리친 우리의 얼굴일 것이다.

“무기력한 사람들은 아무 것도 안하면서 외부 상황이 바뀌기만을 바란다. 상황이 확 변해서 무언가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상황을 바꿔 주지 않는다. 그렇다고 내가 뭔가를 바꿀 수 있을까? 분명한 것은 한 발짝이라도 움직이면 적어도 지금 무기력하게 서 있는 그곳은 탈출할 수 있고, 가능성이 보이는 또 다른 곳에 닿게 된다는 것이다” <김혜남의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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