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수다]폐렴이라고요?

하루 / 2023-05-04 09:02:24
건강의 소중함 깨달은 계기

필자 하루의 ‘하루수다’는 일상생활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하루의 수다를 푸는 형식으로 올리는 글입니다. 특히 하루는 일본어로 ‘봄’이라는 뜻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필자 하루와 함께 일상생활의 수다를 풀어볼까 합니다. (편집자의 주)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출처=해브투뉴스

 

매 똑같은 그런 주말이었다. 주말이지만 습관처럼 아침 6시면 눈이 떠졌다. 좀 더 자고 싶었지만 몇 십년간 몸에 밴 출근 습관은 쉬이 고쳐지지 않는다.

대충 침대를 정리하고 아침에 뭘 먹을까 고민하다가 쉽고 빠른 김치찌개를 만들기로 했다. 그때까지 내 몸이 이상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냥 간밤에 좀 추웠나 싶을 정도의 으스스함과 마른기침 몇 번 삼킬 정도였으니까.

아침밥을 천천히 해먹고 해가 좋은 날 산책 겸 밖을 나와 걸었다. 5월을 코앞에 둔 4월 마지막 아침 햇살은 찬란했다. 봄이 마지막으로 주는 이별의 선물 같았다. 이처럼 좋은 날이라니 더할 나위 없었다.

집에 돌아와 씻고 커피를 내리다가 몸에 뭔가 이상이 생겼음을 깨달았다. 우선 몸이 무거웠다. 얕은 기침도 잦아지기 시작했다. 근육이 조금씩 저려오더니 목이 살살 아파오는 게 느껴졌다. 하... 이런! 어제 너무 춥게 잔건가? 감기라고 생각했다.

요즘 한창 유행하는 독감이 아니길 빌면서 약국에서 대충 감기약을 사서 먹었다. 약기운에 점심 먹을 기력도 없이 하루종일 시름시름 앓았다. 몸이 쑤셔서 저녁도 대충 배달로 시켜먹었다. 다행인건 다음 날이 근로자의 날이라 하루 더 쉴 수가 있다는 건데, 불행인건 그날 골프약속이 잡혀 있다는 거였다. 내일이면 괜찮아지겠지 위로하며 이른 밤 약을 삼킨 후 잠을 청했다.

온 몸에 땀이 한강처럼 흘렀다. 이불을 적시고 베개를 적셨다. 한 시간마다 눈이 떠져서 뒤척였다. 아팠다. 그때 그 새벽의 시간은 참 천천히도 흘렀다. 새벽 1시에 눈을 뜨고, 물 한 잔 마신 후 다시 억지로 눈을 붙인 후 자다가 눈을 뜨면 아직 새벽 2시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몇 번의 새벽을 맞았다.

골프(운동)를 갈 수 있을까? 후배 녀석이 집으로 데리러 온다고 했으니 얹혀 가면 그만이었다. 새벽 4시가 조금 넘어 억지로 몸을 일으키고 옷가지를 챙겼다. 대충 씻고 골프복으로 환복한 후 후배를 기다렸다. 후배의 차가 아파트 단지에 들어왔다는 알림이 휴대폰에 떴다. 주차장으로 내려가 후배와 인사를 나누고 골프장으로 향했다. 힘들고 아픈 몸을 이끌고 약 네 시간을 포천 골프장의 찬바람과 함께 했다. 순전히 약기운으로 버텼다.

다음날 출근을 해서 바로 회사 인근에 있는 병원에 갔다. 물을 삼키기도 힘들만큼 목이 아팠다. 근육통은 말할 것도 없고 열도 올랐다. 코로나일거라고 짐작했다. 코로나랑 너무 비슷한 증상이었기에 앞으로 7일간의 격리 기간이 내게 주어질 것으로 생각했다. 막상 코로나 검사를 했지만 음성이었다. 독감 검사도 받았다. 역시나 음성. 마지막으로 피검사를 한 번 해보자고 했다. 간단히 채혈을 하고 검사 결과를 기다렸다.

의사가 들어오라고 해서 진료실에 들어갔더니 염증 수치가 너무 높다며 폐렴 같다고 했다. 네? 폐렴이요??? 말로만 듣던 병이었다. 내게 그런 병이 올지는 몰랐다. 순간 멍해졌다. 의사는 요즘 코로나, 독감, 폐렴 3개가 다 유행이라 검사를 안 하면 정확한 병을 알 수가 없다고 했다.

세 개의 병이 증상도 비슷해서 올바른 처방을 내리지 않으면 안된다고도 했다. 폐에 염증이 생겨 그런거니까 염증 수치만 낮추면 나아질거라고 항생제가 포함된 조제약을 처방해주었다. 약국에서 조제약을 처방받고 하루 세 번 약을 먹기 시작했다.

오늘이 사흘째. 기침도 가라앉고 인후통도 사라지고 있는 걸 보면 항생제가 잘 듣는가 보다. 코로나가 아니면 감기일거라 철석같이 믿었는데 폐렴은 의외였다. 하는 일이 사람 만나고 술 마시고 하는거라 조금만 몸에 소홀하면 걸릴 수 있는 병이라고 했다. 건강만 지키자라고 했던 나의 의지가 여지없이 무너져 내렸다.

건강은 건강할 때 지키라고 했던가. 가만히 생각해보니 최근 술자리가 꽤 많았다. 적게는 일주일에 서너 번, 많게는 매일 매일을 낮술과 밤술을 가리지 않고 마셔댔구나. 사람과 더 친해지고 싶어서, 나를 더 알리고 싶어서 했던 행동들이 부메랑이 되서 돌아왔다. 걷기운동도 꽤 오래 거르고 있었다. 내 몸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나 자신인데 너무 무심했구나. 피곤하고 고단한 몸을 보살피기는 커녕 술과 게으름으로 방치한 자신이 너무 한심했다.

폐렴을 얻은 후 일주일 잡혀있는 점심, 저녁 약속을 다 연기했다. 상대방도 내가 폐렴이라니까 흔쾌히 연기해주며 쾌차를 빌어줬다. 2023년 5월 2일은 내가 여기 회사에 입사한지 정확히 17년째 되는 날이기도 했다. 17년을 기념하는 내 몸의 작은 반란! 덕분에 건강의 소중함을 더 크게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직장 후배가 17년 기념으로 17년산 위스키를 선물로 보내줬다. 이것 참 이율배반적인 선물이 아닐 수 없었다. 후배의 센스 있는 선물에 피식 웃음이 났다. 그래도 아직 이렇게 웃을 수 있으니 난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 해브투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뉴스댓글 >

S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