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수다] ‘코리안 타임’은 없다

하루 / 2023-01-09 08:27:31
남에게도 소중한 시간, 스스로 배려해야

필자 하루의 ‘하루수다’는 일상생활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하루의 수다를 푸는 형식으로 올리는 글입니다. 특히 하루는 일본어로 ‘봄’이라는 뜻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필자 하루와 함께 일상생활의 수다를 풀어볼까 합니다. (편집자의 주)

  출처=해브투뉴스

 

2022년 12월30일 오전 11시 55분. 내가 보기로 한 영화의 상영시각이었다. 경기도 고양시에 소재한 대형 쇼핑센터 5층에 위치한 멀티플렉스 극장이었다. 한창 잘 나가는 영화인지라 일주일 전에 서둘러 예매를 했었다.

상영시각 10분 전, 자리를 찾아 앉았다. 스크린에는 쉴 새 없이 광고 영상이 흘러 나왔다. 이동통신, 금융, 패션 등의 광고들이 화려하게 화면을 수놓았다. 마치 세상에서 제일 큰 텔레비전 앞에서 리모컨을 들고 앉아 있는 기분이었다.

관객들이 하나 둘씩 자리를 차지했다. 11시 55분에 가까워지자 극장엔 관객들로 가득찼다. 듬성듬성 빈자리도 보였다. 만원은 아닌가보다 생각했다.

정각 11시 55분, 영화는 시작되지 않았다. 12시가 넘어서도 화면엔 광고 영상만 넘실댔다. 늦은 관객들이 부랴부랴 자기 자리를 찾아 헤맸다. 영화가 시작된 건 그로부터 5분 후, 그러니까 12시 5분이 되어서다. 11시 45분에 들어왔으니 20분을 꼼짝없이 광고 영상을 본 셈이었다. 코로나로 극장 수익이 적어졌다고 한들, 이렇게 광고 영상을 강제하다니. 극장측에 화가 났다.

내가 본 광고 영상만 족히 20편은 넘었다. 그 중엔 똑같은 광고들이 몇 번이고 반복해 나왔다. 의도치 않게 광고를 보게 했으면 뭔가 보상이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투덜댔다.

그런데 그 보다 더 화가 난 것은 상영시각이었다. 티켓에는 분명히 11시 55분으로 적혀있는데 왜 10분 뒤에야 상영을 시작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고객과의 약속을 헌신짝 버리듯 하는구나. 10분은 그냥 아무것도 없는 시간으로 생각하는 걸까? 그 10분은 군말 없이 짜여진 광고나 보라는 심보인가? 이럴바엔 애초에 상영시각을 12시 5분으로 해 놓아야 맞는게 아닐까 싶었다.

난 평소 약속시간에 민감한 편이다. 사람을 만나는 일이 많아서 외근이 잦은데 상대방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늘 10분 전에 약속장소로 간다. 10분을 기다리면서 천천히 주위를 살피고 상대방과 어떤 얘기를 나눌지 분위기를 파악하고 소재를 찾는다. 사람을 만나는 최소한의 예의라고 늘 생각해서다. 상대방이 아무 양해 없이 약속시간에 늦는 것을 솔직히 ‘경멸’한다.

“아이고, 제가 좀 늦었네요.” 허허 웃으면서 무마 하려는 의도가 마뜩찮다. 10분을 늦을 거면 10분을 일찍 출발하고, 20분 늦을 거면 20분 일찍 출발하면 될 일이었다.

우리나라는 참 이상한 관습 같은 게 있다. 그 중 하나가 일명 ‘코리안 타임’이라는 건데, 12시에 만나자고 하면 12시 10분에 봐도 그만이라는 식이다. 그 정도 늦는 건 한국에서는 당연한거니까 괜히 혈압 올려가며 스트레스 받지 말라는 거다. 한국에서는 10분, 20분 늦는건 재채기 하듯 자연스러운 일이니까. 그래서 극장 상영시각도 ‘코리안 타임’에 맞춰 놓은 걸까?

‘코리아 타임’이란 말은 한국 전쟁 때 주한 미군이 한국인과 약속을 한 뒤 약속시간보다 늦게 나오는 한국인을 좋지 않게 생각하여 ‘한국인은 약속 시간에 늦게 도착한다. 이것이 한국인의 시간관이다.’ 라고 하여 생겨났다고 한다.

국어사전에는 “약속한 시간을 잘 지키지 않는 한국인의 시간관념이나 습관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라고 나온다. 좋지 않은 버릇이다. 내 시간이 소중하듯 상대방의 시간도 귀하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출처=해브투뉴스

 

새해가 밝았다. 계묘년(癸卯年)이란다. 어김없이 해맞이 앞에서 새해다짐을 하게 된다. 새해다짐은 이내 소원이 되고, 열망이 된다. 뭘 하겠다고 다짐을 하면서 노력없이 뭔가 이뤄지길 소망한다. 담배를 끊겠다면서 로또에 당첨되길 빈다.

다 좋다. 그래도 이것만큼은 잊지 말자. 내가 살아가는 시간과 상대방의 시간은 다를 수 없으니, 부디 시간을 허투루 버리지 않게 스스로 배려하며 살자고. 더 이상 우리에게 ’코리안 타임‘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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