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수다] 냉면이 기가막혀!

서민의 품을 벗어난 영혼의 음식 ‘냉면’

하루

news@havetonews.com | 2023-04-06 10:52:54

 출처=하루수다

 

개인적으로 면을 꽤 좋아한다. 라면, 칼국수, 쫄면, 비빔면 등 종류를 가리지 않는다. 메밀로 만든 막국수와 냉면도 빠지지 않는다. 동네 유명한 우동집을 찾아 휴대폰 지도를 펼치고 정처 없이 걷기도 한다. 칼칼한 어묵 우동 한 그릇에 소주 한 잔은 내가 ‘최애’하는 조합이다. 세상 모든 면을 좋아한다고 자부하지만 사실 나에게도 넘을 수 없는 벽이 하나 있다.

바로 평양냉면이다.

처음 이 음식을 접했을 때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육향이 담겨 있다고는 하나 내게는 너무나 밍밍한 국물 맛이었다. 덜 익은 듯한 메밀면이 똬리를 틀고 앉아 한 번 해보자며 비웃는 것 같았다. 명색이 냉면인데 시원한 맛은 한 개도 느껴지지 않았다. 고명이라고 올려진 것이 절인 무와 달걀 반 쪽, 양지 고기 두어 점이라니 너무 매정하다 싶었다.

후배의 표현에 따르면(그 역시 평양냉면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행주를 빤 물”을 마시는 기분이었다. 냉면 애호가라면 이 무슨 무례한 말이냐 하겠지만 내게 그 음식은 처음 그렇게 다가왔다. 그 후로 한동안 평양냉면과는 거리를 두었다. 굳이 찾아서 먹지는 않았지만 부득이 가야 한다면 마다하지 않을 정도의 거리. 일 년 중 서너 번 정도는 먹었던 것 같다.

그런 내게 신세계가 열린 것은 요즈음이다. 친한 동생과 점심 약속을 잡고 마땅한 식당이 없어 강남에서 꽤 유명한 냉면집을 찾아 들어갔다. 역시나 사람들이 꽤 많았다. 북적이는 식당 안에 간신히 자리를 잡고 음식을 시켰다. ‘슴슴한’ 국물을 다시 경험해야 한다니 내심 기분이 별로였지만 후배를 생각해서 최대한 맛있게 먹기로 했다.

그런데 육수 맛이 조금씩 느껴지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전혀 떠올리지 못했던 진한 육향이 혀끝을 따라 목 젓까지 전해졌다. 어? 이게 뭐지? 왜 맛있지? 새삼 놀라웠다. 냉면 한 그릇을 다 비운 내 모습은 어색하기만 했다. 나이 오십줄을 넘겨서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뜬 것이다.

그 이후 틈만 나면 냉면집을 찾았다. 서울에서 내로라하는 냉면집을 두루 돌아 다녔다. 을지로에 몰려 있는 우래옥, 필동면옥, 을지면옥을 찾았고 광화문에 위치한 남포면옥과 을밀대(분점)를 방문했다. 강남 논현동에 소재한 진미평양냉면집도 단골집이 됐다.

세상이 개벽할 노릇이었다. 인생을 살면서 절대 좋아하게 될지 몰랐던 음식 중에 하나였는데 그 묘한 중독성에 빠져들게 된 것이다. 중독성이 꽤나 높은 음식이라고 누군가 얘기할 때만 하더라도 코웃음을 쳤다. 맵지도 짜지도 않은 것이 중독성이 있어 봐야 얼마나 있겠냐며 웃어 넘겼다. 그런데 아니었다. 각 냉면집 마다 다른 맛의 육수와 고명을 내는데 그걸 경험하는 게 즐거웠다. 워낙에 면을 좋아하는 식성인지라 매일 먹어도 또 그리웠다. 분명 어제 점심으로 먹었는데 오늘 점심에 뭘 먹을지 고민하다 보면 툭하고 녀석이 떠오른다. 신기한 일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냉면 가격이 너무 올랐다는 원성이 들린다. 잘 나가는 냉면집에서 물냉면 한 그릇이 1만6000원이나 된다니 기가 찰 일이다. 원재료 가격과 인건비, 가스비 등이 올라서 어쩔 수 없는 결정이라고 하지만 서민들의 음식이라 하기엔 너무 비싸다. 그나마 아직 가격을 올리지 않은 가게의 냉면 값도 1만4000원~1만5000원 정도 한다. 넷이서 냉면 한 그릇에 불고기라도 먹으면 20만원에 육박한다. 냉면이 ‘누들플레이션’(국수+인플레이션)을 주도하고 있다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는 중이다.

냉면은 실향민들의 그리움을 달래주는 ‘영혼의 음식’이라고 한다. 배우고 익혀야 그 맛을 정확히 알게 되는 음식이다. 담백하고 슴슴한 맛에 향수(鄕愁)가 어린다. 그래서 더 진지하고 애절한 음식이다. 아무리 물가가 올랐어도 냉면이 서민의 품을 벗어나 ‘귀한 음식’으로 대접 받는 건 어쩐지 아닌 것 같다.

모 평론가는 최근 언론 기고에 이렇게 썼다. “치솟은 냉면 값 때문에 목구멍에 술술 넘어가기 힘든 음식이 되어간다. 단숨에 후루룩 먹다가는 사레 드릴 판이다.”라고. 냉면이 기가막힐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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